외대동문 최대모임 두 곳 회장 맡아
단기간에 회원 수· 활동 두드러져
총동문회 새로운 결집 이끌어내는 계기 만들어
‘자랑스러운 외대인상 수상’
페이스 유지하는 꾸준함과 결정적 승부수의
배합을 아는 34년 통상 전문가
동질성을 바탕으로 한 연대는 인간사회의 자연스런 욕구다. 나쁜 선례들을 제거하면, 혈연· 지연· 학연은 그래서 사람들 간의 가장 기초적인 연결의식과 화합의 단초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연대활동 속에서 가장 긍정적인 요소라 할 수 있는 전통이 배양된다. 전통은 자부심을 낳고 사회적 관계 속에서 품위와 존엄을 가진 구성원으로 활동할 수 있는 저력을 준다. 2017년‘자랑스러운 외대인 상(賞)’을 수상한 (주)한길통상의 이영우 대표는 조용하지만 강한 구심력으로 그 자신이 속한 학연을 이전보다 견고한 공동체로 응집시켰다. 그가 함양하고 있는 사람에 대한 신뢰감와 사업적 성숙성의 면모는, 건강한 의식에 바탕한 공동체의 자부심이 사회에서 얼마만큼 유익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구현해 보여주고 있다.
외대 동문 모임 중 가장 큰 두 조직의 회장
이제는 그 비유가 무색해진‘상아탑(象牙塔)’이라는 말은 대학의 순수한 학문적 지성을 일컫는 말이다. 신자유주의 말기의 무한경쟁 시대를 살면서 오로지 이력서에 적어 넣을 더 많은 스펙(spec)에만 전념할 수밖에 없는 요즘의 대학생들에게는 마치 사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전 시대를 산 세대들에게는 대학시절의 자부심 어렸던 시기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말이기도 하다.
대학마다 건학 이념과 정체성을 포괄하는 연상 이미지들이 있다. 이것은 OB(Old Boy. 졸업생· 동문)에게서 재학생들에게 면면히 이어지며 그 대학의 전통을 구축한다. 대학의 자부심은 이 전통의 자랑스러운 고수(固守)에서 생겨난다.
“한길통상이 큰 회사도 아니고 무역업에 종사하는 동문이 유난히 많고 또 훨씬 큰 기업을 경영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신데 제게 시상을 해주신 것은 중소기업 사장으로서는 처음이니 저로서는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이영우 대표의 겸손과는 달리 이 상을 수상하는데 참고가 되는 외대 동문조직에 대한 기여도, 주변 평판, 사업의 내실성 등을 감안하면 당연한 결과인 듯싶다.
“2년 전에 외대 동문산악회장을 맡았어요. 그동안은 교정을 자주 찾지는 못했었는데 회장을 하면서 많은 동문과 특히 후배들과 교류하게 되고 여러 일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관심과 애정이 새록새록 솟았습니다. 작년 5월에는 외대동문 180여 명이 모여 괴산에 있는 산막이 옛길 등산을 했어요. 개교 이래 옥외 모임으로는 최대인원이 모였는데, 총장님 총동문회장님 등 모두 한자리에 모이니 감회가 무척 깊었습니다. 다시한번 외대 동문으로서의 끈끈한 학우애와 애교심이 더욱 굳어지더군요. 회사의 아주 중요한 일이 아니면 동문 모임에는 반드시 참석하도록 노력합니다.”
동문 산악회가 조직에 탄력을 받으면서 이 모임이 불러일으킨 애교심의 자각이 단초가 되어 2015년에는 이영우 대표에게 ITC모임의 회장직 의뢰가 들어왔다. ITC는 150여 명 회원을 가진 동문 최대 모임이면서도 연말 결산모임에 반 정도가 참석 할까말까하는 정도로 위상에 맞지 않게 위축돼 있었다. 이영우 대표가 회장직을 맡은 이후로 회원이 240명까지 증가한 ITC는 현재 여러 개의 산하 소모임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동문 OB들이 청장년은 물론 노년의 동문들이 함께 어울리는, 건강하고 온기 있는 모임으로 지속시키는 게 이영우 회장의 바램이다.
대한항공을 거쳐 무역업으로 독립
이영우 대표의 (주)한길통상은 현재 해외 유명과학기기와 각국에서 생산되는 유명브랜드 류의 도자기 주방용품, 가정용품을 수입해 국내에 공급하고 있다. 과학장비는 미국 Solar Light사, 네델란드의 Kipp & Zonen 사 등과 독점공급계약을 맺고 있다. 주요 공급처는 대부분 국내 화장품사, 대학연구소, 기상청 등이다. 주방·가정용품은 롯데, 현대, 신세계 등의 대형 백화점과 주요 홈쇼핑, 대형할인점 등 70여 우수거래처에 공급된다.
지금이야 관록과 탄탄한 입지를 가진 무역 및 유통회사로 소유 빌딩까지 가지고 있지만 이영우 대표의 도전은 많은 성공인들이 그렇듯이 경험과 패기 하나로 시작했다.
“말레이· 인도네시아어를 전공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세상을 헤쳐 나가기에는 부족하단 생각이 들어 재학 때 전공 못지않게 영어공부에 몰두했고 경영학도 부전공을 했습니다. 외국어에 어느정도 자신감을 갖게되어 졸업 후 바로 대한항공에 입사하게 되었지요. 자재부에 있으면서 미국지사 주재원으로도 나가보고 대한항공 장비 등 신용장 개설 수입을 전담하면서 8년 정도 근무하니 무역업에 대한 전 과정의 실무를 체득하게 되고 저만의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더군요.”
(주)한양주택 기조실을 거쳐 1983년에 한길통상을 창업했으니 올해로 35년째다. 직장생활에서 생긴 이력과 언어 실력이 전부인 이영우 대표에게 넉넉한 자금이 있을 리 만무했다. 화곡동 자택에 사업자 등록을 내고 시작한 사업이 1년 반쯤 지나니 자신감이 생겨 여의도에 10여 평의 사무실로 넓혀 이전하고 직원도 한 명 더 뽑을 수 있었다.
“80년대는 한국 정부가 수출드라이브 정책을 펼치던 때였는데, 주력 품목이 신발, 봉재,인형 등이었고 주로 독일과 일본 등에 수출했어요. 저희는 생산시설이 없으니 샘플을 받아 외국에 보내고 거래하는 오퍼를 했는데 나중에는 미국과 독일에도 수출하게 되었지요. 그런데 86년도쯤 되면서 제가 깨달아 지는 게 있었어요. 한국이 제조업으로 수출만 하는데 언젠가 생산원가가 올라가면 중국의 저가 제품에 가격 경쟁력을 상실하겠다는 예상을 했습니다. 그래서 수입을 해보자는 대안을 생각했지요. 당시는 한국 사회에 아직 정식 수입품들이 많이 들어오지 않을 때였습니다.”
정책적으로 수입자유화가 허락된 것이 80년대 중후반이었고 수출을 통해서 국부를 쌓아가던 시절이라 수입 자체가 거의 없을 때였다. 수입관세가 높았지만 수입자간 경쟁이 심하지 않을 때여서 초창기였지만 사업은 순조로웠습니다.
미국의 ‘에코하우스웨어’라는 브랜드가 한길통상 최초의 수입품으로 롯데 명동점에 공급했다. 이미 입점해 있던 브랜드였는데 미국 본사가 이영우 대표로 에이전트를 바꾸었기에 쉽게 롯데 본점에 입점하게 되었지요. 88년 올림픽을 기점으로 외국인들의 방한이 잦아지고 국제사회와의 교류가 더욱 빈번해지면서 한국의 백화점들이 급성장해 나가는 시기이기도 했다. 한길통상의 공급품들도 더불어 백화점으로 확장해갔다.
88년도부터는 규모있는 수입을 시작하려고 아파트를 담보로 넣고 회사를 확장하는 사업에 최초의 베팅을 했다. 자칫 잘 안되면 집도 절도 없는 양단간의 결정이었다. 30대 였던 이영우 대표에게는 전도양양한 길만이 남아있다는 패기가 충전하던 때였다. 그는 두려움 없이 승부수를 띄었고 품목을 수입하자마자 한 달 만에 물량이 전량 동났다. 그 기세는 98년의 외환 위기때까지 거칠 것 없이 지속됐다.
남극 세종기지에도 나가있는 한길통상 수입 기계
(주)한길통상은 초창기에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는 과학 장비와 기기들을 주로 수입했다. 앞서도 언급한 미국 Solar Light사, 네델란드의 Kipp & Zonen 사 등에서 생산되는 과학분야 기기들이다.
“기상청에서 시행하는 오존층 연구는 저희가 공급하는 토탈오존스펙트로포트미터라는 기계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오존 관측기계는 남극 킹조지 섬에 건설한 세종기지에도 설치돼 있습니다. 우리나라 화장품 회사에서 야외활동 시의 피부건강을 위한 선블럭 크림들을 개발할 때도 저희가 공급한 기계를 대부분 이용하고 있습니다. SPF실험을 할 때 저희 한길통상의 기계를 쓰는데 이 기계를 개발한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Solar Light사는 동제품 세계최대의 회사로 세계 시장의 80% 이상을 공급하고 있어요. 한국에서는 저희가 25년째 독점공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학기계 사업에는 약간의 제약이 있었다. 고가이긴 하지만 사용연한이 길어 매일매일 다수로 팔리는 제품이 아니기 때문에 수요가 많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추가로 수입을 시작한 것이 주방용품과 가정용품이었다. Casa Bugatti, Villeroy & Boch, Miyaco 및 Leifheit 등 주방용품에 세련된 감각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탐낼법한 세계 유수의 브랜드를 대부분 취급한다. 현재는 이 제품들이 메인 품목이 되었다.
서울 송파구청 부근에는 한길통상의 7층 사옥이 있는데 이곳에 주방용품 명품매장 ‘홈스위트홈'을 직영하고 있다. 똑같은 아이템들이 쇼핑몰 ’온키친(www.onkitchen.com) 에서도 판매되고 있다.
35년 동안 무역업을 해온 이영우 대표에게 사업철학이 없을 리 없다. 그는 신뢰를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꼽는다.
“수입과 수출은 늘 파트너가 있어야 성사됩니다. 수입자, 공급자, 그리고 고객들은 신뢰의 트라이앵글을 구축합니다. 우선 종사자 간에 상대편에 대한 배려와 신뢰가 바탕이 돼 있어야 좋은 상품을 공급할 수 있고, 자연히 소비자들도 좋은 가격에 물품을 사면서 신뢰가 생기지요. 사업의 건전한 지속성이 유지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사업에서 인간의 여러 면을 보다
지금까지 큰 부침 없이 한길통상을 이끌어왔지만 딱 한 번의 큰 고비가 있었다. 많은 사업가들에게 좌절과 패배를 안겨줬던 IMF시절이었다. 매우 힘든 시기였지만, 이영우 대표가 쌓아왔던 파트너십의 사업적 신뢰도와 인간적 면모는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를 만들어 준 전환의 계기이기도 했다.
“환율 때문에 하루하루 회사들이 망해가던 때였어요. 수입 결재를 해야 하는데 만 원이던 것이 단번에 2만 원으로 올라버렸어요. 이미 출항지창고에서 선적을 기다리는 제품들은 물론 선적 중인 것들도 많았는데 국내 들어오면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외국 회사들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하고 국내로 물건을 들여오는 시간을 조금씩 늦춰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냉정한 사업세계에서 저의 진심어린 호소를 한곳도 거절하지 않고 모두 받아들여주었어요. 은행에 제출된 선적 서류의 자금 결제 일을 3, 4달 미뤄준다든지, 또 내륙운송 중인 물건을 쉽백해 준다든지, 스무 군데 이상에서 물품 가격을 할인해주는 방법으로 저희와 거래하는 외국회사들이 위기의 저를 구해 주었지요. 심지어 일본 거래회사에서는 이미 은행에서 네고한 대금을 일부러 서류 상 하자를 잡아서 은행에 도로 넣어주고는 환율이 안정되면 그때 다시 결제해줘도 된다는 양해를 해줬습니다. 그때 아, 내가 이제까지 한번도 신용을 잃지 않고 작은 실수도 하지 않은 성실성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에 지금 도움을 받는구나 싶었어요. 제게는 오히려 극복의 힘과 사업가로서 한 단계 더 성숙해지는 터닝포인트가 됐습니다.”
위기는 오히려 반전의 기회가 됐다. 환율 때문에 수입을 못하게 되면서 국내 백화점을 중심으로 한 공급처에서 수금만 하게 되니 오히려 현금이 쌓였다. 이것이 시드머니가 돼서 땅을 마련할 수 있었고 2009년도에 송파구에 한길통상 빌딩을 마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신뢰가 항상 보답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뼈저린 상실감도 맛본 적이 있었다. 사업하면서 가장 실망스럽고 씁쓸한 기억이다. 17년을 거래한 독일의 한 회사가 있었다. 17년 동안 무척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파트너인 담당자와 이영우 대표 모두 음악을 좋아해서 비즈니스 외의 시간에 같이 노래도 부르고 독일 맥주를 마시면서 개인적으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고 한다.
“어느 날 전화 한 통화로 이제 비즈니스를 그만 하자는 통보를 해오더군요. 한길통상보다 수입을 더 많이 하겠다는 한국 회사가 나타났다는 겁니다. 그 사람의 요청대로 우리와는 관계를 끊겠다는 것이었지요. 정말 많이 신뢰했고 비즈니스를 하는 동안 즐거운 추억도 많았는데 그렇게 냉정한 방법으로 관계를 단절 당하니 멍하더군요.”
그래도 실망보다는 신뢰를 더욱 많이 느끼면서 이어온 사업이었다. 개중에는 못내 안타까운 마음이 든 적도 있었다. 일본의 250년 역사를 가진 큰 회사가 약 20년 전에 부도가 난 적이 있었다. 그 회사에 근무하면서 한길통상과 거래하던 몇 몇 사람들이 독립을 했지만 별로 성공을 못해서 이영우 대표는 일본을 방문할 때마다 그들을 불러내 오히려 대접을 해주고 돌아오곤 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 중 작년까지 24년 동안 거래를 해오던 오사카 소재의 한 회사가 부도를 맞았다. 얼마 전 위로 차 일본을 방문했을 때 지인들에게 부탁해 부도난 회사의 대표를 꼭 데리고 나오라고 했지만 미안하다면서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배려의 마음이 한길통상 이영우 대표가 말하는 신뢰의 파트너십의 근간일 것은 당연하다.
크고, 깊고, 풍요로운 ‘한길’
회사명 (주)한길통상의‘한길’에는 이영우 대표가 사업가의 길에서 견지해온 철학처럼 웅숭깊은 인문학적 뜻이 배어있다.
“‘한’이란 음절에는 하나, 크다(한밭→대전), 깊다(한밤중→깊은 밤중) 같은 의미 깊고도 다양한 뜻이 내포돼 있습니다. 한가위, 한 아름의 선물에서도 가슴 가득한 풍요를 느낄 수 있잖아요. 사업에서의 전문화, 한 가지에 열심히 몰두하고 깊이 있게 종사하자는 의지가 ‘한’이라는 말에 담겨있어요. 하나의 길이지요. 보름달이 차면 다음에는 기우는데 그것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나눠주는 것이지요. 열심히 회사를 키워서 그 풍요로움을 누구나에게 모두 나눠주자는 생각도 들어있습니다. 그 모두에는 직원들, 소비자들이 포함돼요. 그들에게 베풀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을 제 사업의 마지막 단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영우 대표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었던 넬슨 만넬라의‘성공이란 결코 쓰러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쓰러질 때마다 반드시 일어서는 것’이라는 경구를 좋아한다. 화려하게 자신을 내세우는 사람보다 자기 페이스를 잃지 않고 꾸준하고 묵묵히 일에 임하는 사람에게서 진정성을 발견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수많은 세월동안 떨어지는‘물방울이 바위 구멍을 뚫는다’는 속담을 그래서 좋아한다. 그러나 시간과 동행하며 자기계획을 실천하는 사람을 신뢰하지만, 어떤 순간에는 사업가로서 기회를 잡는 자기 승부를 걸어야 할 때를 간파해야 능력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이영우 대표는 요즘 사업에서 좀처럼 맛보기 어려운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7년 전쯤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큰 아들이 한길통상을 돕고 있는데, 마침 일본 도쿄에서도 아들이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24년 관계의 사업가가 있어 부자들끼리 넷이서 만나 비즈니스를 넘어선 두 세대의 우정을 나눈다고 한다. 아들 이윤형 이사는 이영우 대표가 가진‘도전정신’을 존경한다. 경제적 혜택을 받고 자란 자신의 세대는 오히려 쉬운 길로 안주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영우 대표에게는 항상 청년 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섬기는 리더십이 필요한 때
이영우 대표는 요즘 한국외국어대학교 동문들과 등산을 하고 난 후 산 아래로 내려와 마시는 막걸리 한 잔의 여유와 이야기에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한길통상이 소재해 있는 송파구의 인문학모임에도 참여해 시대와 사람에 관한 따스한 시선들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영우 대표는 ‘자랑스러운 외대인 상’수상식 연설에서 단절보다 소통, 미움보다 배려, 분열보다 화합된 모습을 부드러운 말씨로 강조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열정을 외대 동문회가 새로이 결집하고 도약하는데 힘쓰겠다는 다짐도 잊지 않았다.
"그동안 외대가 다소 침체기를 겪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총장님과 동문회장을 중심으로 지방 투어를 다니면서 지역동문들과 만나고 학부형들과의 대화를 통해 많은 문제점들을 불식시켰습니다. 반응이 좋아 앞으로를 많이 기대하고 있습니다. 존경과 감사의 마음으로 주변을 섬기는 리더십이 그 어느때보다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하려고 매일 노력합니다.”
성실과 최선으로 내실을 유지하다가 도약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하다는 (주)한길통상 이영우 대표의 균형감처럼, 사업의 가장 좋은 실력은 신뢰구축이라는 그의 소신처럼 한국외국어대학교 동문들과 이영우 대표의 만남이 한국외국어대학교의 미래를 견인해주는 힘이 돼주고 있는 듯하다.
[기사 발췌]
데일리뉴스
정희 기자 2017-03-12 20:55:34
http://idailynews.co.kr/m/view.php?idx=30689
외대동문 최대모임 두 곳 회장 맡아
단기간에 회원 수· 활동 두드러져
총동문회 새로운 결집 이끌어내는 계기 만들어
‘자랑스러운 외대인상 수상’
페이스 유지하는 꾸준함과 결정적 승부수의
배합을 아는 34년 통상 전문가
동질성을 바탕으로 한 연대는 인간사회의 자연스런 욕구다. 나쁜 선례들을 제거하면, 혈연· 지연· 학연은 그래서 사람들 간의 가장 기초적인 연결의식과 화합의 단초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연대활동 속에서 가장 긍정적인 요소라 할 수 있는 전통이 배양된다. 전통은 자부심을 낳고 사회적 관계 속에서 품위와 존엄을 가진 구성원으로 활동할 수 있는 저력을 준다. 2017년‘자랑스러운 외대인 상(賞)’을 수상한 (주)한길통상의 이영우 대표는 조용하지만 강한 구심력으로 그 자신이 속한 학연을 이전보다 견고한 공동체로 응집시켰다. 그가 함양하고 있는 사람에 대한 신뢰감와 사업적 성숙성의 면모는, 건강한 의식에 바탕한 공동체의 자부심이 사회에서 얼마만큼 유익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구현해 보여주고 있다.
외대 동문 모임 중 가장 큰 두 조직의 회장
이제는 그 비유가 무색해진‘상아탑(象牙塔)’이라는 말은 대학의 순수한 학문적 지성을 일컫는 말이다. 신자유주의 말기의 무한경쟁 시대를 살면서 오로지 이력서에 적어 넣을 더 많은 스펙(spec)에만 전념할 수밖에 없는 요즘의 대학생들에게는 마치 사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전 시대를 산 세대들에게는 대학시절의 자부심 어렸던 시기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말이기도 하다.
대학마다 건학 이념과 정체성을 포괄하는 연상 이미지들이 있다. 이것은 OB(Old Boy. 졸업생· 동문)에게서 재학생들에게 면면히 이어지며 그 대학의 전통을 구축한다. 대학의 자부심은 이 전통의 자랑스러운 고수(固守)에서 생겨난다.
“한길통상이 큰 회사도 아니고 무역업에 종사하는 동문이 유난히 많고 또 훨씬 큰 기업을 경영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신데 제게 시상을 해주신 것은 중소기업 사장으로서는 처음이니 저로서는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이영우 대표의 겸손과는 달리 이 상을 수상하는데 참고가 되는 외대 동문조직에 대한 기여도, 주변 평판, 사업의 내실성 등을 감안하면 당연한 결과인 듯싶다.
“2년 전에 외대 동문산악회장을 맡았어요. 그동안은 교정을 자주 찾지는 못했었는데 회장을 하면서 많은 동문과 특히 후배들과 교류하게 되고 여러 일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관심과 애정이 새록새록 솟았습니다. 작년 5월에는 외대동문 180여 명이 모여 괴산에 있는 산막이 옛길 등산을 했어요. 개교 이래 옥외 모임으로는 최대인원이 모였는데, 총장님 총동문회장님 등 모두 한자리에 모이니 감회가 무척 깊었습니다. 다시한번 외대 동문으로서의 끈끈한 학우애와 애교심이 더욱 굳어지더군요. 회사의 아주 중요한 일이 아니면 동문 모임에는 반드시 참석하도록 노력합니다.”
동문 산악회가 조직에 탄력을 받으면서 이 모임이 불러일으킨 애교심의 자각이 단초가 되어 2015년에는 이영우 대표에게 ITC모임의 회장직 의뢰가 들어왔다. ITC는 150여 명 회원을 가진 동문 최대 모임이면서도 연말 결산모임에 반 정도가 참석 할까말까하는 정도로 위상에 맞지 않게 위축돼 있었다. 이영우 대표가 회장직을 맡은 이후로 회원이 240명까지 증가한 ITC는 현재 여러 개의 산하 소모임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동문 OB들이 청장년은 물론 노년의 동문들이 함께 어울리는, 건강하고 온기 있는 모임으로 지속시키는 게 이영우 회장의 바램이다.
대한항공을 거쳐 무역업으로 독립
이영우 대표의 (주)한길통상은 현재 해외 유명과학기기와 각국에서 생산되는 유명브랜드 류의 도자기 주방용품, 가정용품을 수입해 국내에 공급하고 있다. 과학장비는 미국 Solar Light사, 네델란드의 Kipp & Zonen 사 등과 독점공급계약을 맺고 있다. 주요 공급처는 대부분 국내 화장품사, 대학연구소, 기상청 등이다. 주방·가정용품은 롯데, 현대, 신세계 등의 대형 백화점과 주요 홈쇼핑, 대형할인점 등 70여 우수거래처에 공급된다.
지금이야 관록과 탄탄한 입지를 가진 무역 및 유통회사로 소유 빌딩까지 가지고 있지만 이영우 대표의 도전은 많은 성공인들이 그렇듯이 경험과 패기 하나로 시작했다.
“말레이· 인도네시아어를 전공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세상을 헤쳐 나가기에는 부족하단 생각이 들어 재학 때 전공 못지않게 영어공부에 몰두했고 경영학도 부전공을 했습니다. 외국어에 어느정도 자신감을 갖게되어 졸업 후 바로 대한항공에 입사하게 되었지요. 자재부에 있으면서 미국지사 주재원으로도 나가보고 대한항공 장비 등 신용장 개설 수입을 전담하면서 8년 정도 근무하니 무역업에 대한 전 과정의 실무를 체득하게 되고 저만의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더군요.”
(주)한양주택 기조실을 거쳐 1983년에 한길통상을 창업했으니 올해로 35년째다. 직장생활에서 생긴 이력과 언어 실력이 전부인 이영우 대표에게 넉넉한 자금이 있을 리 만무했다. 화곡동 자택에 사업자 등록을 내고 시작한 사업이 1년 반쯤 지나니 자신감이 생겨 여의도에 10여 평의 사무실로 넓혀 이전하고 직원도 한 명 더 뽑을 수 있었다.
“80년대는 한국 정부가 수출드라이브 정책을 펼치던 때였는데, 주력 품목이 신발, 봉재,인형 등이었고 주로 독일과 일본 등에 수출했어요. 저희는 생산시설이 없으니 샘플을 받아 외국에 보내고 거래하는 오퍼를 했는데 나중에는 미국과 독일에도 수출하게 되었지요. 그런데 86년도쯤 되면서 제가 깨달아 지는 게 있었어요. 한국이 제조업으로 수출만 하는데 언젠가 생산원가가 올라가면 중국의 저가 제품에 가격 경쟁력을 상실하겠다는 예상을 했습니다. 그래서 수입을 해보자는 대안을 생각했지요. 당시는 한국 사회에 아직 정식 수입품들이 많이 들어오지 않을 때였습니다.”
정책적으로 수입자유화가 허락된 것이 80년대 중후반이었고 수출을 통해서 국부를 쌓아가던 시절이라 수입 자체가 거의 없을 때였다. 수입관세가 높았지만 수입자간 경쟁이 심하지 않을 때여서 초창기였지만 사업은 순조로웠습니다.
미국의 ‘에코하우스웨어’라는 브랜드가 한길통상 최초의 수입품으로 롯데 명동점에 공급했다. 이미 입점해 있던 브랜드였는데 미국 본사가 이영우 대표로 에이전트를 바꾸었기에 쉽게 롯데 본점에 입점하게 되었지요. 88년 올림픽을 기점으로 외국인들의 방한이 잦아지고 국제사회와의 교류가 더욱 빈번해지면서 한국의 백화점들이 급성장해 나가는 시기이기도 했다. 한길통상의 공급품들도 더불어 백화점으로 확장해갔다.
88년도부터는 규모있는 수입을 시작하려고 아파트를 담보로 넣고 회사를 확장하는 사업에 최초의 베팅을 했다. 자칫 잘 안되면 집도 절도 없는 양단간의 결정이었다. 30대 였던 이영우 대표에게는 전도양양한 길만이 남아있다는 패기가 충전하던 때였다. 그는 두려움 없이 승부수를 띄었고 품목을 수입하자마자 한 달 만에 물량이 전량 동났다. 그 기세는 98년의 외환 위기때까지 거칠 것 없이 지속됐다.
남극 세종기지에도 나가있는 한길통상 수입 기계
(주)한길통상은 초창기에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는 과학 장비와 기기들을 주로 수입했다. 앞서도 언급한 미국 Solar Light사, 네델란드의 Kipp & Zonen 사 등에서 생산되는 과학분야 기기들이다.
“기상청에서 시행하는 오존층 연구는 저희가 공급하는 토탈오존스펙트로포트미터라는 기계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오존 관측기계는 남극 킹조지 섬에 건설한 세종기지에도 설치돼 있습니다. 우리나라 화장품 회사에서 야외활동 시의 피부건강을 위한 선블럭 크림들을 개발할 때도 저희가 공급한 기계를 대부분 이용하고 있습니다. SPF실험을 할 때 저희 한길통상의 기계를 쓰는데 이 기계를 개발한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Solar Light사는 동제품 세계최대의 회사로 세계 시장의 80% 이상을 공급하고 있어요. 한국에서는 저희가 25년째 독점공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학기계 사업에는 약간의 제약이 있었다. 고가이긴 하지만 사용연한이 길어 매일매일 다수로 팔리는 제품이 아니기 때문에 수요가 많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추가로 수입을 시작한 것이 주방용품과 가정용품이었다. Casa Bugatti, Villeroy & Boch, Miyaco 및 Leifheit 등 주방용품에 세련된 감각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탐낼법한 세계 유수의 브랜드를 대부분 취급한다. 현재는 이 제품들이 메인 품목이 되었다.
서울 송파구청 부근에는 한길통상의 7층 사옥이 있는데 이곳에 주방용품 명품매장 ‘홈스위트홈'을 직영하고 있다. 똑같은 아이템들이 쇼핑몰 ’온키친(www.onkitchen.com) 에서도 판매되고 있다.
35년 동안 무역업을 해온 이영우 대표에게 사업철학이 없을 리 없다. 그는 신뢰를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꼽는다.
“수입과 수출은 늘 파트너가 있어야 성사됩니다. 수입자, 공급자, 그리고 고객들은 신뢰의 트라이앵글을 구축합니다. 우선 종사자 간에 상대편에 대한 배려와 신뢰가 바탕이 돼 있어야 좋은 상품을 공급할 수 있고, 자연히 소비자들도 좋은 가격에 물품을 사면서 신뢰가 생기지요. 사업의 건전한 지속성이 유지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사업에서 인간의 여러 면을 보다
지금까지 큰 부침 없이 한길통상을 이끌어왔지만 딱 한 번의 큰 고비가 있었다. 많은 사업가들에게 좌절과 패배를 안겨줬던 IMF시절이었다. 매우 힘든 시기였지만, 이영우 대표가 쌓아왔던 파트너십의 사업적 신뢰도와 인간적 면모는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를 만들어 준 전환의 계기이기도 했다.
“환율 때문에 하루하루 회사들이 망해가던 때였어요. 수입 결재를 해야 하는데 만 원이던 것이 단번에 2만 원으로 올라버렸어요. 이미 출항지창고에서 선적을 기다리는 제품들은 물론 선적 중인 것들도 많았는데 국내 들어오면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외국 회사들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하고 국내로 물건을 들여오는 시간을 조금씩 늦춰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냉정한 사업세계에서 저의 진심어린 호소를 한곳도 거절하지 않고 모두 받아들여주었어요. 은행에 제출된 선적 서류의 자금 결제 일을 3, 4달 미뤄준다든지, 또 내륙운송 중인 물건을 쉽백해 준다든지, 스무 군데 이상에서 물품 가격을 할인해주는 방법으로 저희와 거래하는 외국회사들이 위기의 저를 구해 주었지요. 심지어 일본 거래회사에서는 이미 은행에서 네고한 대금을 일부러 서류 상 하자를 잡아서 은행에 도로 넣어주고는 환율이 안정되면 그때 다시 결제해줘도 된다는 양해를 해줬습니다. 그때 아, 내가 이제까지 한번도 신용을 잃지 않고 작은 실수도 하지 않은 성실성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에 지금 도움을 받는구나 싶었어요. 제게는 오히려 극복의 힘과 사업가로서 한 단계 더 성숙해지는 터닝포인트가 됐습니다.”
위기는 오히려 반전의 기회가 됐다. 환율 때문에 수입을 못하게 되면서 국내 백화점을 중심으로 한 공급처에서 수금만 하게 되니 오히려 현금이 쌓였다. 이것이 시드머니가 돼서 땅을 마련할 수 있었고 2009년도에 송파구에 한길통상 빌딩을 마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신뢰가 항상 보답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뼈저린 상실감도 맛본 적이 있었다. 사업하면서 가장 실망스럽고 씁쓸한 기억이다. 17년을 거래한 독일의 한 회사가 있었다. 17년 동안 무척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파트너인 담당자와 이영우 대표 모두 음악을 좋아해서 비즈니스 외의 시간에 같이 노래도 부르고 독일 맥주를 마시면서 개인적으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고 한다.
“어느 날 전화 한 통화로 이제 비즈니스를 그만 하자는 통보를 해오더군요. 한길통상보다 수입을 더 많이 하겠다는 한국 회사가 나타났다는 겁니다. 그 사람의 요청대로 우리와는 관계를 끊겠다는 것이었지요. 정말 많이 신뢰했고 비즈니스를 하는 동안 즐거운 추억도 많았는데 그렇게 냉정한 방법으로 관계를 단절 당하니 멍하더군요.”
그래도 실망보다는 신뢰를 더욱 많이 느끼면서 이어온 사업이었다. 개중에는 못내 안타까운 마음이 든 적도 있었다. 일본의 250년 역사를 가진 큰 회사가 약 20년 전에 부도가 난 적이 있었다. 그 회사에 근무하면서 한길통상과 거래하던 몇 몇 사람들이 독립을 했지만 별로 성공을 못해서 이영우 대표는 일본을 방문할 때마다 그들을 불러내 오히려 대접을 해주고 돌아오곤 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 중 작년까지 24년 동안 거래를 해오던 오사카 소재의 한 회사가 부도를 맞았다. 얼마 전 위로 차 일본을 방문했을 때 지인들에게 부탁해 부도난 회사의 대표를 꼭 데리고 나오라고 했지만 미안하다면서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배려의 마음이 한길통상 이영우 대표가 말하는 신뢰의 파트너십의 근간일 것은 당연하다.
크고, 깊고, 풍요로운 ‘한길’
회사명 (주)한길통상의‘한길’에는 이영우 대표가 사업가의 길에서 견지해온 철학처럼 웅숭깊은 인문학적 뜻이 배어있다.
“‘한’이란 음절에는 하나, 크다(한밭→대전), 깊다(한밤중→깊은 밤중) 같은 의미 깊고도 다양한 뜻이 내포돼 있습니다. 한가위, 한 아름의 선물에서도 가슴 가득한 풍요를 느낄 수 있잖아요. 사업에서의 전문화, 한 가지에 열심히 몰두하고 깊이 있게 종사하자는 의지가 ‘한’이라는 말에 담겨있어요. 하나의 길이지요. 보름달이 차면 다음에는 기우는데 그것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나눠주는 것이지요. 열심히 회사를 키워서 그 풍요로움을 누구나에게 모두 나눠주자는 생각도 들어있습니다. 그 모두에는 직원들, 소비자들이 포함돼요. 그들에게 베풀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을 제 사업의 마지막 단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영우 대표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었던 넬슨 만넬라의‘성공이란 결코 쓰러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쓰러질 때마다 반드시 일어서는 것’이라는 경구를 좋아한다. 화려하게 자신을 내세우는 사람보다 자기 페이스를 잃지 않고 꾸준하고 묵묵히 일에 임하는 사람에게서 진정성을 발견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수많은 세월동안 떨어지는‘물방울이 바위 구멍을 뚫는다’는 속담을 그래서 좋아한다. 그러나 시간과 동행하며 자기계획을 실천하는 사람을 신뢰하지만, 어떤 순간에는 사업가로서 기회를 잡는 자기 승부를 걸어야 할 때를 간파해야 능력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이영우 대표는 요즘 사업에서 좀처럼 맛보기 어려운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7년 전쯤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큰 아들이 한길통상을 돕고 있는데, 마침 일본 도쿄에서도 아들이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24년 관계의 사업가가 있어 부자들끼리 넷이서 만나 비즈니스를 넘어선 두 세대의 우정을 나눈다고 한다. 아들 이윤형 이사는 이영우 대표가 가진‘도전정신’을 존경한다. 경제적 혜택을 받고 자란 자신의 세대는 오히려 쉬운 길로 안주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영우 대표에게는 항상 청년 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섬기는 리더십이 필요한 때
이영우 대표는 요즘 한국외국어대학교 동문들과 등산을 하고 난 후 산 아래로 내려와 마시는 막걸리 한 잔의 여유와 이야기에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한길통상이 소재해 있는 송파구의 인문학모임에도 참여해 시대와 사람에 관한 따스한 시선들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영우 대표는 ‘자랑스러운 외대인 상’수상식 연설에서 단절보다 소통, 미움보다 배려, 분열보다 화합된 모습을 부드러운 말씨로 강조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열정을 외대 동문회가 새로이 결집하고 도약하는데 힘쓰겠다는 다짐도 잊지 않았다.
"그동안 외대가 다소 침체기를 겪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총장님과 동문회장을 중심으로 지방 투어를 다니면서 지역동문들과 만나고 학부형들과의 대화를 통해 많은 문제점들을 불식시켰습니다. 반응이 좋아 앞으로를 많이 기대하고 있습니다. 존경과 감사의 마음으로 주변을 섬기는 리더십이 그 어느때보다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하려고 매일 노력합니다.”
성실과 최선으로 내실을 유지하다가 도약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하다는 (주)한길통상 이영우 대표의 균형감처럼, 사업의 가장 좋은 실력은 신뢰구축이라는 그의 소신처럼 한국외국어대학교 동문들과 이영우 대표의 만남이 한국외국어대학교의 미래를 견인해주는 힘이 돼주고 있는 듯하다.
[기사 발췌]
데일리뉴스
정희 기자 2017-03-12 20:5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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